로마의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는 앉아 있는 모세가 율법판을 무릎에 비스듬히 걸친 채 있다. 수염은 길게 꼬인 밧줄처럼 흘러내리고, 고개는 왼쪽으로 급히 돌려져 있다. 무언가를 방금 들은 듯한 자세다. 그리고 이마에는 — 두 개의 작은 뿔.
히브리어 동사 하나
출애굽기 34장 29절의 동사는 카란이다. 같은 어근에서 나온 명사는 "뿔" — 케렌 — 이다. 그러나 동사로 쓰일 때 카란은 "빛살을 내다, 빛나다" 를 뜻한다. 히브리어에는 그런 유연성이 있다. 명사가 동사가 되고, 동사는 이미지의 은유적 무게를 그대로 지닌다.
4세기에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옮길 때, 그는 카란을 읽고 구체적인 명사 이미지를 택했다. 그의 라틴어는 cornuta esset facies — 그의 얼굴에 뿔이 났다 — 라고 썼다. 그가 다른 가능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선 칠십인역은 "영광을 받았다" (δεδόξασται)라고 읽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다른 길을 갔다. 정직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틀린 선택이었다.
구절이 말하는 것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그는 직접 볼 수 없는 영광을 가진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산에서 내려왔다. 무언가가 그의 피부에 스며들어 있었다. 본인은 알지 못했다 — 깨닫지 못하였더라.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보았다. 놓치기 쉬운 세부가 여기에 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알아차린 사람이다. 대화의 빛이 그에게 잔상처럼 남아 있다.
미술에 남은 뿔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는 서방 기독교의 라틴어 성경이 되었다. 천 년 동안 기독교 미술 속 모세는 뿔을 달고 있었다. 늘 염소 뿔처럼 잔혹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작은 혹 모양, 때로는 살짝 말린 돌기였다. 1513–1515년에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이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가 뿔을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뿔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그 점만 빼면 더없이 숭고한 얼굴 위에서다.
조각을 다시 보라. 뿔은 작고, 거의 돌기에 가깝다. 당신을 잡는 것은 그 아래의 얼굴이다. 방금 내려온 듯한 손이 갈라놓은 수염, 돌려진 눈길. 미켈란젤로를 두고 흔히 쓰는 말 terribilità, 곧 인물이 뿜어내는 두려운 현존은 뿔에 있지 않다. 시선에 있다. 이마 위 오역은, 모세가 여전히 조각가가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만큼 중요하지 않다.
직접 써 보기
마지막 구절만 직접 옮겨 적어 보세요.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다 적고 나면 히에로니무스가 놓친 것이 보입니다. 뿔이 아닙니다. 표식도 아닙니다. 잔상입니다. 우리가 엿듣지 못한 대화에서 한 사람에게 남아 버린 무엇입니다.
뿔은 실수다. 빛은 실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