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에는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이 걸려 있다. 1610–1611년, 이탈리아에서 8년을 보내고 돌아온 직후의 첫 대규모 위촉작이다. 중앙 패널은 혼잡하다. 다섯 남자와 개 한 마리가 십자가의 기둥에 몸을 밀어붙이며 땅에서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십자가는 이미 45도로 기울어 있다. 그리스도가 그 위에 박혀 있고, 두 팔은 활짝 뻗어 있으며, 머리는 하늘을 향해 돌려져 있다. 그의 몸은 구도상 수직이지만, 십자가는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가로지르는 대각선이다.
드는 사람들
이 그림은 노동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십자가형이 여러 몸에 의해 — 각각 다른 힘줄로 — 수행되어야 했던 노동이라는 사실. 왼쪽의 한 남자는 밧줄을 당긴다. 또 한 남자는 나무에 어깨를 밀어 넣는다. 십자가 발치의 세 번째 남자는 두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고, 자기가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을 올려다본다. 개가 그 장면을 향해 짖는다. 뒤의 하늘은 어둡다. 이 사람들은 악하지 않다. 그들은 일꾼이다.
반종교개혁의 주장
루벤스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가톨릭 반종교개혁이 개신교의 절제에 맞서 그림-신학을 강경화하던 시기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이미지가 관람자의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 신앙을 살과 땀과 근육으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 고집했다.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은 정확히 그 일을 한다. 고요가 없다. 점잖은 거리도 없다. 다만 힘, 무게, 그리고 그 힘 위로 솟아오르는 수직의 인물이 있을 뿐이다.
구절이 말하는 것
요한복음은 십자가형을 한 긴, 간결한 문장으로 서술한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리스어 동사는 바스타존 — 짐을 지다, 나르다. 요한은 여정 동안의 무게를 예수 자신의 팔에 둔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모두 구레네 사람 시몬이 강제로 돕게 된 것을 전한다. 요한은 지는 행위만 전한다. 무게가 요점이다.
루벤스는 무게를 분산한다. 길 위에서, 요한은 그리스도가 혼자 졌다고 말한다. 언덕 위에서, 병사들은 그것을 들어 올려야 했다. 짐을 지는 일과 세우는 일 사이, 여러 쌍의 손이 있다. 루벤스는 그 손들을 그린다.
그들이 들어 올리는 이
그러나 이 그림은 일차적으로 병사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수직 축을 지배한다. 가슴에 빛이 닿아 있다. 머리는 위로 돌려져 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으며, 눈은 하늘을 향한다. 그는 병사들을 보고 있지 않다. 그는 그들 위의 침묵을 향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든다. 그는 기도 속으로 솟아오른다.
루벤스의 조용한 신학은 이것이다. 십자가의 노동은 여러 손을 필요로 하지만, 그 손들에 의해 들어 올려지는 이는 그들이 볼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해 말하고 있다. 집단적 폭력처럼 보이는 장면의 한가운데에, 사실은 부름의 행위가 있다.
그 40초
구절을 직접 손으로 옮겨 적어 보라 — 첫 구절만: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약 40초. 그 시간 동안 그림이 알고 있는 것을 느낀다. 무게는 몸짓이 아니라 노동으로 가장 정직하게 그려진다는 것. 들어 올려지는 인물은 이미 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
십자가는 45도. 사람들은 힘을 쓴다. 얼굴은 하늘로 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