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는 1590년대에 겟세마네의 기도를 여러 번 그렸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버전은 가로가 1미터를 넘고 세로보다 길다. 다만 목록상 귀속은 엘 그레코 본인이 아니라 그의 공방으로 되어 있다. 구도의 압축은 그럼에도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리스도가 전경에 무릎을 꿇고 있다. 깊은 진홍빛 옷을 걸치고 두 팔을 기도의 자세로 들어 올렸다. 그 위, 왼쪽 상단에 한 천사가 구름 위에 올라 있다. 천사는 잔을 내밀고 있다. 그리스도 아래, 자궁이나 조개껍질처럼 보이는 바위에 감싸인 채, 세 제자가 자고 있다. 오른쪽 상단, 작은 풍경의 구획 안에서, 유다가 횃불을 든 병사들을 이끌고 온다. 체포가 나무들 사이로 오고 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보이는 곳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물리적 현실에서는 이 사건들이 순서대로 일어난다 — 먼저 기도, 그다음 제자들의 잠, 그다음 병사들의 도착. 엘 그레코는 이 모두를 한 화면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놓는다. 제자들을 품은 바위, 천사를 실은 구름, 유다를 감춘 잎사귀 — 화가는 시간을 시간 위에 포개 놓았다.
도착하는 잔
복음서 중 누가만이 천사를 기록한다. 그리고 겟세마네를 그린 화가들 중 엘 그레코가 천사를 가장 강조한다. 여기서 천사는 위로의 현존이 아니다. 천사는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천사의 손에 들린 잔은 그리스도가 방금 옮겨 달라고 기도했던 그 잔이다.
이것이 엘 그레코의 수정이다. 잔은 공중에 남아 있는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사자가 들고 와서 장면 안에 놓는 대상이다. 하늘은 그 기도에 응답한다.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라는 청에, 잔을 되돌려 보내는 방식으로 답한다. 기도는 들려졌다. 응답은 잔 자체다.
바위 안의 제자들
그리스도 아래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가 곡선을 이룬 돌의 빈 공간 안에 잠들어 있다. 엘 그레코는 마치 바위가 그들 주위로 접혀 그들의 실패를 덮어주듯이 그렸다. 그림의 가장 이상한 선택 중 하나다. 제자들은 단순히 노출된 채 자고 있지 않다. 그들은 풍경 자체에 감싸여 있다, 마치 동산이 그들을 변호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는 관대함이 있다. 그들은 깨어 있지 못했다. 바위가 어쨌거나 그들을 덮는다. 그리스도는 혼자 기도하지만, 잠든 이들은 수치에 노출되지 않는다. 그들은 화가가 보호할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다.
직접 써 보기
구절 전체를 직접 옮겨 적어 보세요.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다 적고 나면 이 구절에서 치워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천사가 힘만 더한다는 게 보입니다. 어떤 기도는 치워 주는 것이 아니라 가져다주는 것으로 응답됩니다. 잔은 한번 입에 올린 뒤에는 청한 그대로 옵니다. 저만치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쥐여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동산은 깨어 있지 못한 이들을 감싸 안듯 접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천사는 잔을 내밀고 있다. 제자들은 바위 안에서 잠들어 있다. 횃불들은 나무들 사이로 오고 있다.